청산 사랑방
♡ 네잎 크로바의 사연 ♡ - 네잎 크로바 / 이규항 - 네잎 크로바 찾으려고 꽃 수풀 잔디에서 해 가는 줄 몰랐네 당신에게 드리고픈 네잎 크로바 사랑의 선물 희망의 푸른 꿈 당신의 행운을 당신의 충성을 바치려고 하는 맘 네잎 크로바 찾으려고 헤매는 마음 네잎 크로바 희망의 푸른 꿈 당신의 행운을 당신의 충성을 바치려고 하는 맘 네잎 크로바 찾으려고 헤매는 마음 네잎 크로바 네잎 크로바-이인선作詞-김영종作曲-이규항 노래 네잎 크로바의 사연 고산골이란 말 그대로 깊고 깊은 산골에 밤이면 밤바다 구슬픈 노루 소리와 덤불짙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부엉이 노래를 벗삼아 네잎 크로바와 짧은 인생을 함께한 이가 있었다 일명 네잎크로바로 더욱 더 잘 알려질 정도로 지금 흐르는 이노래를 이규항씨보다 더 잘 불러서 지금도 무주읍내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으면 50대 이상은 거의 다 알정도이다 심지어 이곡의 작곡가가 찾아와 취입을 시켜주겠다며 서울로 오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마다하고 무주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취입비면 시골에서 편히 살수있기 때문이다 그전엔 가수가 되겠다고 목을 튀우기위해 앞산 꼭대기에 올라 혹은 대덕산 중턱의 폭포수 아래에서 소리를 질러대곤하며 매력적인 저음가수로서 소리를 다듬곤 하였지만 누에고치 감정한 돈을 갖고 날라서는 되돌아오기 일수였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또한 가수 지망하는 친구들이 논밭 팔아가며 결국 실패하고 탕진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내가 어릴땐 풀벌레 노래하는 달밤에 고구마 잎을 따며 구성진 가락으로 수양버들이~하늘~하늘 구름을 타고~~ 할머님과 부모님의 청으로 노래를 부르고 앵콜송을 몇번이나 부른곤 하던 명가수였다... 나도 가요 수업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받은셈이고 내 동생들 역시 그러하고 지금은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니도 고사리 꺽으러 다니시며 노래 수업을 받았으니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숨은 가수였다고 주저않고 장담할수가 있는것이다^^* 고향인 진안과 이웃인 무주에서는 국회의원배 혹은 군수배 콩쿨대회마다 싹쓸이하니 온가족이 손목시계는 다차고 있었으며 난 그시계를 군생활때도 차고 있었다 당시 배호씨가 요절한후엔 ♬그시절 푸르던 잎~~어느덧 낙엽지고~~♪를 넘 슬프고 안타깝게 부르곤 하였다 네잎 크로바를 부르며 짧게 살다간 그는 지금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의 무주IC가 있는 적상면 가옥리의 한적한 산자락에 잠들어 있다... 해마다 벌초를 하고나서 소주한잔 부어놓고 네잎 크로바를 한번 꼭 불러주곤 한다... 고향을 가던 처가를 가던 그앞을 달릴적마다 형님생각에 잠시 숙연해지곤 하지만 일찍히 당신의 가슴에 자식을 뭍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막심 하기도 하다 이미 30년전 26세로 부모님 가슴에 뭍혀서 건장하신 아버님도 똑똑하고 아까운 자식을 잃은 후유증이 병이되어 그렇게 장수하시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또 봄이 돌아왔으니 거동도 안되시면서도 산천초목이 다 돌아오는데 내자식은 아니오나 하시며 눈물 지으실게고 살아있는 동생들을 힘들게 하실게다... 나는 당시 해군복무중 첫 휴가때 형님을 만나고선 형님 가실땐 함정 근무로 멀리서 있었기에 기별도 못받고 두번째 휴가시 집안 분위기와 동네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어두운 말속에서 겨우 감을 잡고서 여동생에게 캐물어 겨우 이 안타까운 얘기를 들어야했다... "네잎크로바" 그렇게 큰키는 아닌 보통키였지만 핸섬하고 말잘하고 항상 미소를 잃지않는 그모습에 사람을 끌어드리는 넉넉한 매력을 지녔던터라 주변엔 항상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팬들이 많았다 고향동네는 물론 그가 마지막에 살던 무주의 아가씨들은 얼마나 동경하였을까? 그러면서도 똑똑하고 사리에 능통하여 시골의 유지들인 기관장급도 꼼짝을 못할정도로 경우밝기로 유명하였다 최근 무주의 지인으로부터 듣기로는 조그만 악단과 함께 각 고을을 돌며 노인정등에 위로공연도 다녔었고 고을 어른들은 물론 젊은층까지 그 인기가 대단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주좋은 인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와의 인연을 오래 두지않고 불의의 사고로 그를 요절케 하였으니 네잎크로바가 꼭 행운만 가져다 주지는 못하여서 나도 한동안은 이곡을 멀리 하였었다... 오래전 언젠가 KBS TV의 아름다운 노래산책에서 일주일 이상 나왔다고 막내가 녹화를 해두었다가 내게 보여주어 울적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었다 컴을 알고난후에는 이 노래 음원을 찾기위해 백방으로 찾아 헤메고 다녔지만 쉽지 않더니 한해전 어느 음악 사이트에서 결국 찾아내었다 카페생활 하면서 난 이곡을 항상 가입인사로 올리곤 하였었는데 역시 이곡이 좋은가보다^^* ♬네잎 크로바~찾으려고 꽃수풀 잔디에서~해가는줄 몰랐네~ 당신에게 드리고픈 네잎 크로바 사랑의 선물~~ ♪ 올 가을 벌초때는 더욱 멋지게 불러 봐야겠다^^* 잼없는 얘기 읽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적어놓고 3년이 흘렀어도 이런곳에 올려도 될까 고심했습니다. 청산님들 이라면 이해 하시리라 믿고 올려드림을 양지 바랍니다. 청산님들이여~~!!! 네잎 크로바의 행운이 있으시라^^* ^^*꾸~~우~~뻑^*^ 2004.11월 어느날에 쓴글을 2007. 6월 17일에 올립니다...
네잎 크로바-이인선作詞-김영종作曲-이규항 노래 네잎 크로바의 사연 고산골이란 말 그대로 깊고 깊은 산골에 밤이면 밤바다 구슬픈 노루 소리와 덤불짙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부엉이 노래를 벗삼아 네잎 크로바와 짧은 인생을 함께한 이가 있었다 일명 네잎크로바로 더욱 더 잘 알려질 정도로 지금 흐르는 이노래를 이규항씨보다 더 잘 불러서 지금도 무주읍내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으면 50대 이상은 거의 다 알정도이다 심지어 이곡의 작곡가가 찾아와 취입을 시켜주겠다며 서울로 오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마다하고 무주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취입비면 시골에서 편히 살수있기 때문이다 그전엔 가수가 되겠다고 목을 튀우기위해 앞산 꼭대기에 올라 혹은 대덕산 중턱의 폭포수 아래에서 소리를 질러대곤하며 매력적인 저음가수로서 소리를 다듬곤 하였지만 누에고치 감정한 돈을 갖고 날라서는 되돌아오기 일수였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또한 가수 지망하는 친구들이 논밭 팔아가며 결국 실패하고 탕진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내가 어릴땐 풀벌레 노래하는 달밤에 고구마 잎을 따며 구성진 가락으로 수양버들이~하늘~하늘 구름을 타고~~ 할머님과 부모님의 청으로 노래를 부르고 앵콜송을 몇번이나 부른곤 하던 명가수였다... 나도 가요 수업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받은셈이고 내 동생들 역시 그러하고 지금은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니도 고사리 꺽으러 다니시며 노래 수업을 받았으니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숨은 가수였다고 주저않고 장담할수가 있는것이다^^* 고향인 진안과 이웃인 무주에서는 국회의원배 혹은 군수배 콩쿨대회마다 싹쓸이하니 온가족이 손목시계는 다차고 있었으며 난 그시계를 군생활때도 차고 있었다 당시 배호씨가 요절한후엔 ♬그시절 푸르던 잎~~어느덧 낙엽지고~~♪를 넘 슬프고 안타깝게 부르곤 하였다 네잎 크로바를 부르며 짧게 살다간 그는 지금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의 무주IC가 있는 적상면 가옥리의 한적한 산자락에 잠들어 있다... 해마다 벌초를 하고나서 소주한잔 부어놓고 네잎 크로바를 한번 꼭 불러주곤 한다... 고향을 가던 처가를 가던 그앞을 달릴적마다 형님생각에 잠시 숙연해지곤 하지만 일찍히 당신의 가슴에 자식을 뭍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막심 하기도 하다 이미 30년전 26세로 부모님 가슴에 뭍혀서 건장하신 아버님도 똑똑하고 아까운 자식을 잃은 후유증이 병이되어 그렇게 장수하시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또 봄이 돌아왔으니 거동도 안되시면서도 산천초목이 다 돌아오는데 내자식은 아니오나 하시며 눈물 지으실게고 살아있는 동생들을 힘들게 하실게다... 나는 당시 해군복무중 첫 휴가때 형님을 만나고선 형님 가실땐 함정 근무로 멀리서 있었기에 기별도 못받고 두번째 휴가시 집안 분위기와 동네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어두운 말속에서 겨우 감을 잡고서 여동생에게 캐물어 겨우 이 안타까운 얘기를 들어야했다... "네잎크로바" 그렇게 큰키는 아닌 보통키였지만 핸섬하고 말잘하고 항상 미소를 잃지않는 그모습에 사람을 끌어드리는 넉넉한 매력을 지녔던터라 주변엔 항상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팬들이 많았다 고향동네는 물론 그가 마지막에 살던 무주의 아가씨들은 얼마나 동경하였을까? 그러면서도 똑똑하고 사리에 능통하여 시골의 유지들인 기관장급도 꼼짝을 못할정도로 경우밝기로 유명하였다 최근 무주의 지인으로부터 듣기로는 조그만 악단과 함께 각 고을을 돌며 노인정등에 위로공연도 다녔었고 고을 어른들은 물론 젊은층까지 그 인기가 대단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주좋은 인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와의 인연을 오래 두지않고 불의의 사고로 그를 요절케 하였으니 네잎크로바가 꼭 행운만 가져다 주지는 못하여서 나도 한동안은 이곡을 멀리 하였었다... 오래전 언젠가 KBS TV의 아름다운 노래산책에서 일주일 이상 나왔다고 막내가 녹화를 해두었다가 내게 보여주어 울적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었다 컴을 알고난후에는 이 노래 음원을 찾기위해 백방으로 찾아 헤메고 다녔지만 쉽지 않더니 한해전 어느 음악 사이트에서 결국 찾아내었다 카페생활 하면서 난 이곡을 항상 가입인사로 올리곤 하였었는데 역시 이곡이 좋은가보다^^* ♬네잎 크로바~찾으려고 꽃수풀 잔디에서~해가는줄 몰랐네~ 당신에게 드리고픈 네잎 크로바 사랑의 선물~~ ♪ 올 가을 벌초때는 더욱 멋지게 불러 봐야겠다^^* 잼없는 얘기 읽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적어놓고 3년이 흘렀어도 이런곳에 올려도 될까 고심했습니다. 청산님들 이라면 이해 하시리라 믿고 올려드림을 양지 바랍니다. 청산님들이여~~!!! 네잎 크로바의 행운이 있으시라^^* ^^*꾸~~우~~뻑^*^ 2004.11월 어느날에 쓴글을 2007. 6월 17일에 올립니다...
네잎 크로바의 사연 고산골이란 말 그대로 깊고 깊은 산골에 밤이면 밤바다 구슬픈 노루 소리와 덤불짙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부엉이 노래를 벗삼아 네잎 크로바와 짧은 인생을 함께한 이가 있었다 일명 네잎크로바로 더욱 더 잘 알려질 정도로 지금 흐르는 이노래를 이규항씨보다 더 잘 불러서 지금도 무주읍내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으면 50대 이상은 거의 다 알정도이다 심지어 이곡의 작곡가가 찾아와 취입을 시켜주겠다며 서울로 오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마다하고 무주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취입비면 시골에서 편히 살수있기 때문이다 그전엔 가수가 되겠다고 목을 튀우기위해 앞산 꼭대기에 올라 혹은 대덕산 중턱의 폭포수 아래에서 소리를 질러대곤하며 매력적인 저음가수로서 소리를 다듬곤 하였지만 누에고치 감정한 돈을 갖고 날라서는 되돌아오기 일수였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또한 가수 지망하는 친구들이 논밭 팔아가며 결국 실패하고 탕진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내가 어릴땐 풀벌레 노래하는 달밤에 고구마 잎을 따며 구성진 가락으로 수양버들이~하늘~하늘 구름을 타고~~ 할머님과 부모님의 청으로 노래를 부르고 앵콜송을 몇번이나 부른곤 하던 명가수였다... 나도 가요 수업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받은셈이고 내 동생들 역시 그러하고 지금은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니도 고사리 꺽으러 다니시며 노래 수업을 받았으니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숨은 가수였다고 주저않고 장담할수가 있는것이다^^* 고향인 진안과 이웃인 무주에서는 국회의원배 혹은 군수배 콩쿨대회마다 싹쓸이하니 온가족이 손목시계는 다차고 있었으며 난 그시계를 군생활때도 차고 있었다 당시 배호씨가 요절한후엔 ♬그시절 푸르던 잎~~어느덧 낙엽지고~~♪를 넘 슬프고 안타깝게 부르곤 하였다 네잎 크로바를 부르며 짧게 살다간 그는 지금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의 무주IC가 있는 적상면 가옥리의 한적한 산자락에 잠들어 있다... 해마다 벌초를 하고나서 소주한잔 부어놓고 네잎 크로바를 한번 꼭 불러주곤 한다... 고향을 가던 처가를 가던 그앞을 달릴적마다 형님생각에 잠시 숙연해지곤 하지만 일찍히 당신의 가슴에 자식을 뭍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막심 하기도 하다 이미 30년전 26세로 부모님 가슴에 뭍혀서 건장하신 아버님도 똑똑하고 아까운 자식을 잃은 후유증이 병이되어 그렇게 장수하시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또 봄이 돌아왔으니 거동도 안되시면서도 산천초목이 다 돌아오는데 내자식은 아니오나 하시며 눈물 지으실게고 살아있는 동생들을 힘들게 하실게다... 나는 당시 해군복무중 첫 휴가때 형님을 만나고선 형님 가실땐 함정 근무로 멀리서 있었기에 기별도 못받고 두번째 휴가시 집안 분위기와 동네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어두운 말속에서 겨우 감을 잡고서 여동생에게 캐물어 겨우 이 안타까운 얘기를 들어야했다... "네잎크로바" 그렇게 큰키는 아닌 보통키였지만 핸섬하고 말잘하고 항상 미소를 잃지않는 그모습에 사람을 끌어드리는 넉넉한 매력을 지녔던터라 주변엔 항상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팬들이 많았다 고향동네는 물론 그가 마지막에 살던 무주의 아가씨들은 얼마나 동경하였을까? 그러면서도 똑똑하고 사리에 능통하여 시골의 유지들인 기관장급도 꼼짝을 못할정도로 경우밝기로 유명하였다 최근 무주의 지인으로부터 듣기로는 조그만 악단과 함께 각 고을을 돌며 노인정등에 위로공연도 다녔었고 고을 어른들은 물론 젊은층까지 그 인기가 대단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주좋은 인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와의 인연을 오래 두지않고 불의의 사고로 그를 요절케 하였으니 네잎크로바가 꼭 행운만 가져다 주지는 못하여서 나도 한동안은 이곡을 멀리 하였었다... 오래전 언젠가 KBS TV의 아름다운 노래산책에서 일주일 이상 나왔다고 막내가 녹화를 해두었다가 내게 보여주어 울적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었다 컴을 알고난후에는 이 노래 음원을 찾기위해 백방으로 찾아 헤메고 다녔지만 쉽지 않더니 한해전 어느 음악 사이트에서 결국 찾아내었다 카페생활 하면서 난 이곡을 항상 가입인사로 올리곤 하였었는데 역시 이곡이 좋은가보다^^* ♬네잎 크로바~찾으려고 꽃수풀 잔디에서~해가는줄 몰랐네~ 당신에게 드리고픈 네잎 크로바 사랑의 선물~~ ♪ 올 가을 벌초때는 더욱 멋지게 불러 봐야겠다^^* 잼없는 얘기 읽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적어놓고 3년이 흘렀어도 이런곳에 올려도 될까 고심했습니다. 청산님들 이라면 이해 하시리라 믿고 올려드림을 양지 바랍니다. 청산님들이여~~!!! 네잎 크로바의 행운이 있으시라^^* ^^*꾸~~우~~뻑^*^ 2004.11월 어느날에 쓴글을 2007. 6월 17일에 올립니다...
고산골이란 말 그대로 깊고 깊은 산골에 밤이면 밤바다 구슬픈 노루 소리와 덤불짙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부엉이 노래를 벗삼아 네잎 크로바와 짧은 인생을 함께한 이가 있었다 일명 네잎크로바로 더욱 더 잘 알려질 정도로 지금 흐르는 이노래를 이규항씨보다 더 잘 불러서 지금도 무주읍내에서 네잎 크로바를 찾으면 50대 이상은 거의 다 알정도이다 심지어 이곡의 작곡가가 찾아와 취입을 시켜주겠다며 서울로 오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마다하고 무주읍내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니 그취입비면 시골에서 편히 살수있기 때문이다 그전엔 가수가 되겠다고 목을 튀우기위해 앞산 꼭대기에 올라 혹은 대덕산 중턱의 폭포수 아래에서 소리를 질러대곤하며 매력적인 저음가수로서 소리를 다듬곤 하였지만 누에고치 감정한 돈을 갖고 날라서는 되돌아오기 일수였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또한 가수 지망하는 친구들이 논밭 팔아가며 결국 실패하고 탕진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내가 어릴땐 풀벌레 노래하는 달밤에 고구마 잎을 따며 구성진 가락으로 수양버들이~하늘~하늘 구름을 타고~~ 할머님과 부모님의 청으로 노래를 부르고 앵콜송을 몇번이나 부른곤 하던 명가수였다... 나도 가요 수업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받은셈이고 내 동생들 역시 그러하고 지금은 거동도 못하시는 어머니도 고사리 꺽으러 다니시며 노래 수업을 받았으니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숨은 가수였다고 주저않고 장담할수가 있는것이다^^* 고향인 진안과 이웃인 무주에서는 국회의원배 혹은 군수배 콩쿨대회마다 싹쓸이하니 온가족이 손목시계는 다차고 있었으며 난 그시계를 군생활때도 차고 있었다 당시 배호씨가 요절한후엔 ♬그시절 푸르던 잎~~어느덧 낙엽지고~~♪를 넘 슬프고 안타깝게 부르곤 하였다 네잎 크로바를 부르며 짧게 살다간 그는 지금은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의 무주IC가 있는 적상면 가옥리의 한적한 산자락에 잠들어 있다... 해마다 벌초를 하고나서 소주한잔 부어놓고 네잎 크로바를 한번 꼭 불러주곤 한다... 고향을 가던 처가를 가던 그앞을 달릴적마다 형님생각에 잠시 숙연해지곤 하지만 일찍히 당신의 가슴에 자식을 뭍고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막심 하기도 하다 이미 30년전 26세로 부모님 가슴에 뭍혀서 건장하신 아버님도 똑똑하고 아까운 자식을 잃은 후유증이 병이되어 그렇게 장수하시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또 봄이 돌아왔으니 거동도 안되시면서도 산천초목이 다 돌아오는데 내자식은 아니오나 하시며 눈물 지으실게고 살아있는 동생들을 힘들게 하실게다... 나는 당시 해군복무중 첫 휴가때 형님을 만나고선 형님 가실땐 함정 근무로 멀리서 있었기에 기별도 못받고 두번째 휴가시 집안 분위기와 동네 사람들의 안타까워하는 어두운 말속에서 겨우 감을 잡고서 여동생에게 캐물어 겨우 이 안타까운 얘기를 들어야했다... "네잎크로바" 그렇게 큰키는 아닌 보통키였지만 핸섬하고 말잘하고 항상 미소를 잃지않는 그모습에 사람을 끌어드리는 넉넉한 매력을 지녔던터라 주변엔 항상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팬들이 많았다 고향동네는 물론 그가 마지막에 살던 무주의 아가씨들은 얼마나 동경하였을까? 그러면서도 똑똑하고 사리에 능통하여 시골의 유지들인 기관장급도 꼼짝을 못할정도로 경우밝기로 유명하였다 최근 무주의 지인으로부터 듣기로는 조그만 악단과 함께 각 고을을 돌며 노인정등에 위로공연도 다녔었고 고을 어른들은 물론 젊은층까지 그 인기가 대단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주좋은 인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와의 인연을 오래 두지않고 불의의 사고로 그를 요절케 하였으니 네잎크로바가 꼭 행운만 가져다 주지는 못하여서 나도 한동안은 이곡을 멀리 하였었다... 오래전 언젠가 KBS TV의 아름다운 노래산책에서 일주일 이상 나왔다고 막내가 녹화를 해두었다가 내게 보여주어 울적한 마음으로 따라 불렀었다 컴을 알고난후에는 이 노래 음원을 찾기위해 백방으로 찾아 헤메고 다녔지만 쉽지 않더니 한해전 어느 음악 사이트에서 결국 찾아내었다 카페생활 하면서 난 이곡을 항상 가입인사로 올리곤 하였었는데 역시 이곡이 좋은가보다^^* ♬네잎 크로바~찾으려고 꽃수풀 잔디에서~해가는줄 몰랐네~ 당신에게 드리고픈 네잎 크로바 사랑의 선물~~ ♪ 올 가을 벌초때는 더욱 멋지게 불러 봐야겠다^^* 잼없는 얘기 읽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 글을 적어놓고 3년이 흘렀어도 이런곳에 올려도 될까 고심했습니다. 청산님들 이라면 이해 하시리라 믿고 올려드림을 양지 바랍니다. 청산님들이여~~!!! 네잎 크로바의 행운이 있으시라^^* ^^*꾸~~우~~뻑^*^ 2004.11월 어느날에 쓴글을 2007. 6월 17일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