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여행 산행기

붉은 치마 적상산을 찾아서^*^

청산가곡 2008. 11. 10. 16:13

붉은 치마 적상산을 찾아서^*^

 

무박산행으로 설악산을 예약 하였었는데

비오고 눈온다고 많이들 예약을 취소 시키니

설악산행은 취소되고 청산은 어디로 갈까나?*^^

그런데 설악산에 갔었으면 첫눈 맞이 할뻔 하였는데~~

아무튼 지나가버린 아쉬움으로만 남는다^*^

 

인천의 수많은 산악회를 웹상에서 모두 찾아 다니니 

내장산에서 무슨 모임이라도 갖는 것처럼

모두가 며칠전 내가 다녀온 내장산으로 간다 하고

마음에 드는 강천산이 있었는데 이미 매진 이란다.

우여곡절끝에 하나 찾은것이 바로 적상산인데

딱 한좌석이 남았다 하여 새벽 일찍 산악회차에 올라

경부고속도로~대전 통영간을 달리니

이내 붉을'赤', 치마'裳'의 적상산(1034M)이
나타나는데 자연산성으로 이루어진 산 정상에는
고려말과 조선조에 쌓았다는 적상산성이 있는 산이다.

적상산은 조선왕조실록 4대사고가 안국사에 있었는데
일제때 서울로 옮겨졌다가 한국동란때 북으로 가서
지금은 김일성 종합대학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자~우리 함께 붉은 치마를 두른 적상산으로 가보실까요?*^^

 

산악회차들은 인천을 벗어나면 어느 산악회를 막론하고 소등을 하여 잠을 자게 하는데

앞좌석에서 계속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와 확인하니 여산우님이 껌을 씹는 소리를 낸다.

참다 못하여 처음 참가한 산악회지만 소리좀 안나게 할수 없어요?...곧장 조용......^*^

조금은 미안하여 휴게소에서 아까 싫은소리 해서 죄송 했습니다~~했더니~~수줍어 한다.^*^

 

암튼 한숨 자는가 했는데 아침 식사 하고 오라는 차내 방송에 눈떠보니 옥산 휴게소인데

김밥 한줄 뚝딱 해치우고 커피까지 한잔하고 나와서 예전에도 몇번 담았던

옥산휴게소의 명물인 물방아를 담아 보았다.

무주 IC를 벗어나 진안 & 장수군 방향으로 몇분 가면 적상산장이 나오고 서창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니 곧 의병장 장지현 장군의 묘소에  이 거대한 소나무가 청산을 반긴다.

이천의 반룡송 못지않은 이 소나무를 먼 발치에서 보고 뛰어와 이리보고 저리보고 담아 보는데 배경이 마을에 가리어

조금 그렇긴 하지만~~이사진 담다보니 일행은 모두 사라지고 초반부터 땀흘리며 쫓아가야 했다^*^ 

 장지현 장군 묘소에서 바라보는 적상산의 향로봉쪽 산세인데 단풍은 조금은 때가 지난것으로 판단된다^*^

이 소나무의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 하니 임진왜란시 용맹을 떨치고 가신 장군의 묘소를 쓴후 심은 나무인것 같다.

다음에 이곳을 지나가거든 꼭 다시 한번 들려서 제대로 사진 한번 담아 보아야겠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넘 아름다운 샛 노오란 국화꽃이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동네의 어느집엔  벽에 곶감을 잔뜩 걸어놓고 말리고 있다*^^햐~~맛 참 좋겠다^*^

천하안민에 보배로운 적상산 : 산행 들머리에 멋지게 단장된 소공원이 있었다^*^ 

적상산행 입구인 서창 마을의 단풍이 말해 주지만 적상산은 가을이 제격이다.

사면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단풍든 모습이 마치 여인의 붉은치마를 닮았다 해서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무주군 적상면 일대를 차지하며 거대한 산군을 형성하고 있는 적상산은 사고지와 안국사,

산정호수가 있어 사철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만산홍엽 가을이 오면 적상산은 바위와 땅마저도 검붉어지고

마치 붉은 치마를 입은 요염한 여인의 모습으로 등산객을 유혹한다.

오죽하면 이름마저도 붉을 적(赤), 치마 상(裳)을 쓸까.

또 높고 푸른 하늘과 도로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산 주변 마을마다 붉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풍광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덕유산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돼 있는 적상산은 무주구천동을 비롯한 덕유산 33경의 유명세에 가려있지만,

산세 좋고 멋진 암봉과 운해가 산허리를 휘감는 풍경과 봄의 진달래도 볼거리다.

중앙에 우뚝 솟은 북쪽의 향로봉(1,025m)과 남쪽의 기봉(1,034m)이 마주하고 있는데,

정상 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림이 울창하다.

반면, 표고 800~900m대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자 적상산성이 축조된 천혜의 요새지로 손색이 없다.  

적상산의 가을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주읍내에서 안국사가 있는 산정호수까지 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지금 청산처럼 안국사 너머 서창마을에서 등산을 통해 오르는 방법이다.

두 가지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갖고 있지만 단풍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등산이 최고가 아닐까?...  

조금전 장지현 장군 묘소의 소나무를 보듯이 내 발로 걸은 만큼 볼수가 있고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기보다 완만한 등산코스가 잘 닦여 있어 느린 걸음도 2시간이면 오를 수 있고

청산의 발걸음 으로는 쉬엄 쉬엄 사진 담아 가면서도 1시간 30분이면 향로봉에 도달을 하고 만다.

산 너머로 도로가 닦이기 전부터 등산로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길로 올랐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하나의 바위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에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 산으로 들어가면 몽실 몽실한 흙길이 많다.

쿠션 좋은 카펫 위를 걷는 느낌으로 발끝으로 올라오는 촉감이 부드럽다.  

그런데 여기쯤에서 어느님 왈 : 벌써 땀이 너무 흐르네~라고 하니까

다른님 왈 : 땀이 흐르면 정상이여~!

다시 어느님 왈 : 땀이 흐르면 정상 이어야 하는데 아직 5분의 1도 못가서 땀이 흐르니 하는 말이여^*^허허허^*^

적상산은 볼거리도 많다.

장도바위를 비롯해 장군바위·처마바위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곡과 멀어지며 길은 곧바로 주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이마에 맺힌 땀은 올라온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선선한 가을바람이 단숨에 씻겨준다.

나는 땀 흘리는 맛으로 산에 오르지만~~아마도 모든이가 이 맛에 산을 찾을 것이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민란을 수습하고 개선 하던중 이곳에 이르러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깍아세운 암벽에 띠를 두른듯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곳에 암벽이 가로 막혀 더 이상 오를수 없게 되자  최영장군은 허리에 차고 있던 장도를 뽑아

힘껏 바위를 내리치니 그 순간 바위가 옆으로 쪼개지며 길이 열렸다 하여 장도 바위라고 한대요^*^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지만 암튼 잼있는 전설같은 이야기이다^*^허허허^*^

처음엔 장지현 장군 묘소의 소나무 담다가 맨 꼴치였는데  치고 올라와 여기까지는 훨씬 앞질러 홀로 왔기에

장도바위 반대편으로 가서 사방을 조망하며 디카를 찰칵 거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왁자지껄 소리에

알아보니 뒤쳐졌던 나의 산악회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진 담는 다는것이 이렇게 되니 한컷  담는 사이에 일행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 덕분에 홀로 떨어져 엉뚱한 하산으로 버린 택시비가 꽤 된다^*

장도바위 반대편에 갔던 덕분에 볼수 있었던 산성의 모습인데 지금도 꽤 많이 남아 있는듯 하다. 

이곳이 산성 안으로 들어서는 서문 이라는 곳인데 아래 안내판을 읽어 주시길^*^ 

아~ 그래서 서창(서쪽의 창고) 이라는 이름이 생겼구나아^*^

서문을 지나 열심히 낙엽 쌓인 산길을 오르다보니 어느 누군가 공룡처럼 생겼다고 하여 담아 보았다^*^ 

능선에서 만나는 첫 번째 갈림길은 정상인 향로봉으로 가는 길과 안국사 가는 길로 나뉜다.

등산하면서 정상을 밟지 않으면 아마도 뒷 맛이 개운치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향로봉은 약 300m 거리로 짧으니 다녀올 만하다.

하지만 정상이 주는 장쾌한 조망감은 숲에 가려져 거의 없다.

북쪽으로만 시야가 트여 있지만 그마저도 안개로 조망이 어려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줄기는 백두대간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시작되어 대덕산, 삼봉산을 지나면 덕유산 백암봉에서

북쪽 향적봉으로 지맥 하나를 갈라놓고 육십령, 지리산으로 산줄기를 이어간다.

백암봉에서 나뉜 지맥은 덕유산 향적봉을 지나 북서쪽 10km쯤 뻗어나간 곳에 적상산을 솟구쳐 놓았다.

적상산의 물줄기는 모두 금강에 합수되어 군산 하구둑에서 서해에 살을 섞는 금강의 상류다.

향로봉에서 망원대쪽을 바라보면 무주시내와 금강 상류가 길게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운장산과 마이산이 눈앞에 다가 온다고 하는데 운무가 가득하여 건너편의 산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향로봉에 닿으면 표지판(1.034m)이 서있고 조망이 좋아 가슴이 탁 트인다만 시계가 흐려서 제대로 조망은 못하고

기념 사진을 담고 보니 부근엔 너른 평지가 많아 오전 11시 30분인데도 이른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향로봉 정상에서 일행들과 맺주 한잔 나누고 과일 조금 들고서 후미팀이 오기를 기다려 안렴대로 향한다~~. 

옛날엔 아마도 이곳이 대부분 승병들이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 하던 터가 아니었나 싶다^*^ 

산악회 사진 전문가인 바람님이 열심히 앞으로 달려 가더니 바람처럼 담아준 사진 이다^*^

안렴대에서 바라본 향로봉의 모습인데 운무가 자욱 하다... 

 

너럭바위에서 본 주변 경치가 수려하여 최적의 조망대다.

안렴대 옆에는 임진왜란 때 이조실록을 보관했던 천연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만산홍엽을 이룬 적상산과 주변 조망하며 갖는 간식 시간이 즐겁다. 

적상산 최고의 전망대인 안렴대는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과 진을 치고 피신했던 곳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한 바위 봉우리다.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의 실록을 이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전해져 오는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곳이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탁 트인 조망 덕분에 코앞에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에서 중봉-남덕유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펼쳐지고, 멀리 가야산과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운무로 시야가 많이도 막혀서 볼 재간이 없었다.  

정상의 기봉과 향로봉을 잇는 능선 오른쪽으로 넓은 분지는 항상 사방에서 흘러드는 샘이 마르지 않아 토질이 비옥하여,

산성과 사고를 지키는 승병을 뽑고 성안에 성안사, 보경사, 상원사, 호국사, 안국사 등 많은 사찰을 세워 

이곳에 밭을 일구며 기거하도록 하였으나 대부분의 사찰은 없어지고 지금은 호국사 터만 남아있다. 

안국사는 사고지와 함께 무주 양수발전소 상부댐 수몰지역에 묶여 1988년에 6km 밖에 있는 호국사터 옆으로 이전했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져 온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지키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의 산정호수인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안국사는 호국사지로 옮겨져 지금의 안국사에 이르렀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 비,

사적 제146호 적상산성, 기념물 제 88호 사고 등이 있으며, 전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 성보박물관이 있다.

 극락전의 단청이 하도 고와서 담아 보았다.

극락전 (이곳의 대웅전)의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삼불

많은 산행객과 여행객들이 극락전 앞을 오간다.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의 안내문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 안내판 

극락전 앞에서 청산도 한컷   

 성보 박물관 내에는 전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징에도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천수 관음 불상인데 뒤의 탱화가 더욱 자세히 나와있다.

성보 박물관의 모습이다.

처음엔 건축물 모양새를 보고서 사고 보관을 하던 곳인가 했는데 그것은 아니다. 

서창 통제소에서 그림대로 안국사까지 왔다.  

안국사 내에 있는 석간수가 흐르는 우물인데 물맛이 참으로 좋았다. 

어릴적 악어배라고 부르던 산과일 인데 조금 큰것이 개량종 인가보다. 

주차장이 있는데 배짱좋은 어느님이 예까지나 차를 가져 왔을꼬?*^^ 

안국사는 적상산 사고의 관리를 위해 승병들이 기거하던 사찰.

절 아래에는 이 일대를 둘러싼 적상산성이 버티고 있다.

숲이 우거져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간간이 아래 마을이 빼끔 바라다 보인다.

적산산성의 안내문 한번 읽어 보시길^*^ 

국중 제일 정토 도장 문인데 여행객들의 차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분명 덕유산의 명성에 가린 탓이리라.

덕유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30년이 됐지만 적상산을 찾는 발길은 덕유산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겨울 상고대와 봄 철쭉에 뒤지고, 여름에는 구천동의 맑은 물을 따라 가지 못하니 그도 그럴 만 하다.

하지만 가을만은 다르다. 단풍이 득세하는 때만은 제아무리 덕유산이라한들 적상산을 따르지 못한다.

적상산은 이름부터 단풍향이 가득하다.

산을 뒤덮은 홍단풍이 마치 붉은(赤) 치마(裳)를 두른 아낙네의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었다.  

단풍(절정)에서 낙엽(파국)으로 진행중인 적상산은 일년 중 가장 드라마틱한 풍광을 자아낸다.

굳이 발품을 들이기 싫어하는 여행자에게도 좋다. 해발 1,000m까지 도로가 나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한 싯구처럼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를 연상시키는 황량함이 아니라, 차분히 스며드는 낭만의 추일서정(秋日抒情)이 있다.

안국사 입구엔 차량과 산행객으로 복잡하다. 

적상호를 굽어 보고 있는 적상산 사고(史庫)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곳.

단풍보다 더 붉은 단청이 인상적이다.

사고를 지나 안국사로 가는 길 300여m는 적상산 단풍 여행의 하이라이트.

짙어가는 단풍과 뒹구는 낙엽이 한 데 어우러져 필설을 비웃는 장관을 이룬다.    

날씨가 흐려져 적상호의 모습이 어둡게 나왔다.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이 300여 년간 보관돼온 적상산사고 전시관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 복제본이 제작, 설치돼 있을 뿐 아니라 사고 전시패널과

디오라마 등 총 22종의 전시물이 설치돼 있어 일반인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무주군 관계자는 "적상산 사고지를 통해 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역사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적상호 주변엔 아름다운 단풍이 많았는데 이곳에서들 많이도 촬영을 하더라... 

올해 다녔던 단풍 산행중 이곳의 단풍이 가장 고운것 같은데 호수 주변이라 가뭄을 덜타서 그러리라~~~^*^ 

이제 얼마후면 저~ 호수위로 단풍잎도 낙엽되어  날려 가리라...  

절벽 위에 솟은 적상산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산 정상에 호수가 있다는 것이다.

독특한 산 지형이 만들어 낸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인데 ‘적상호’라 불린다 .

해발 1,000m에 조성된 인공 호수다.

산 아래 무주호에서 끌어올린 물을 호수에 담은 뒤 다시 떨어뜨려 전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아담한 호수 주변을 에워싼 단풍나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돋운다.

양수 발전기 위에 조성된 전망대에 오르면 덕유산, 두문산, 봉화산,

조항산 등 인근 산을 비롯, 무주 시내 전경이 한 눈에 잡힌다고 한다. 

가을빛으로 치장한 호수의 10월은 에메랄드 물빛이라는데 오늘은 완전히 흐리다.

날씨만 좋으면 한낮에 붉은 단풍이 물에 반사되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할것도 같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보글보글 피어 오르면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는 산안개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자태를 뽐낼것이다.

호수 끝 전망대에 오르면 무주읍내와 덕유산 자락을 한눈에 감상 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그곳에는 가지 못하였다.

주차장 뒷산은 완전히 붉은 치마를 입고 있는데  

여기서 산정호수 아래로 굽이 굽이 돌고 돌아 내려오는 길은

버스끼리 마주 오면 한참을 기다렸다 진행 하는등

상당히 험준하고 가파르며 아슬 아슬한 길이 많다.

적상산을 빠져나와 도로변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는데

내가 즐기는 푸른 배추쌈에 포식을 하였다.

이제껏 산행 다니면서 오늘처럼 푸짐한 식사도 처음이다.

평소에 워낙히 야채쌈을 좋아하는 청산 인지라

옆의 여산우님이 자꾸만 배추쌈을 가져다 주며 더 들라고 하고~~

내 앞에 보이는 배추는 모두 먹어 치웠더니 포만감이 가득하다^*^

 

이렇게 적상산의 산행기를 마치고자 하는데

부족 하나마 즐감 하시며 건강 하시길 빕니다.

 

2008. 11. 8 토요일

 

♣ 표 정 - 임웅균 ♣
나뭇잎이 떨어져  거리에 쌓이는데
그대 떠난 거리에  세월이 쌓이는데
스쳐버린 추억들  오늘도 잊지못해 
서성이는 발길에  흐느끼는 나뭇잎
 
낙엽이 곱던 날  계절따라 가다 왔다 
아픈 상처만 남겨 놓고  떠나버린 내 사랑아 
눈물을 눈빛으로   조용히 돌아서던 
그날의 그 표정이  마지막 인사였나.
마지막 인사였나
.........